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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달과 6펜스 - 서미셋 몸

2023-05-09

달과 6펜스

서미셋 몸의 대표작 달과 6펜스. 너무 저명한 고전이기에 언젠가 읽겠다 했는데 오늘 눈에 밟혔나 보다.

책은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를 ’나’ 의 관점으로 관찰한 기록으로 서술되어 있다. 런던의 적당한 아파트에서의 만남부터 타히티 섬까지 스트릭랜드의 긴 여정에 화자는 우연히 함께하게 된다.

책은 예술에 대한 화자의 생각으로 시작한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숭고함은 대중에 속해있지 않음에서 나온다. 진정한 예술가라 함은 사회의 평가, 잣대에 굴복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순수히 창작으로써의 기쁨을 보수로 살아가는 존재를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 즉 작가란 창작의 기쁨과 가슴속에 울적한 생각을 토로하는 일을 그 보수로 여길뿐 그 밖의 일에는 무관심해서 칭찬을 받건 비난을 받건 성공을 하건 실패를 하건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세대간의 예술관이 바뀌면 독립된 두 세대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 청년들이 일으키는 혁명적인 흐름을 기성세대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진정한 예술가라면 변화에 순응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애초에 그들을 위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정한 예술이 고립되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참 예술이라고 칭송하는 것들에 대한 의구심도 함께 드러낸다. 많은 대중은 저명한 평론가와 이야기등으로 비추어보아 작품을 평가한다. 하지만 이런 양상은 다분히 불안정하여 우연에 의존하는 대중의 평가를 비판하기도 한다. 진정한 미에 대해 느끼는 것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다.

작가는 앞으로 등장할 스트릭랜드를 진정한 예술가의 한명으로 봐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비굴하지만 빛나는 그의 일생을 말이다.

Q0. 예술이 대중적인 시장의 지원을 받아 발전한다면 얼마나 상업적이어도 되는가?


스트릭랜드를 처음 만나는 것은 스트릭랜드 부인이 초대해준 만찬회에서다. 평소 예술과 문학을 즐기는 스트릭랜드 부인은 여러 작가들을 초청하 오찬회를 열곤 했다. 그녀는 동정심 많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 동정심은 분명히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지만 그 반면 또 본인이 그것을 의식적으로 남용항 우려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훌륭한 점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의 불행을 보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당장 달려가는 그 마음에서는 오히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듯한 기미마저 엿볼수 있기 때문이다.

Q1. 동정은 일련의 위선이며 욕망의 뒤틀린 발현인가 아니면 순수 선의 일종일까?

화자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다정함에서 다정한 인간상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는 듯 하다. 우리는 다정한 것은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강한 지배욕, 모순된 쾌락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니체가 말했듯이 친절은 이기심에서 나온다.

이런 성향은 앞으로 나올 더크 스트로브와 이어지는 듯 하다. Q2. 강한 지배욕을 다정함, 친절로 드러내는 성향의 사람들은 왜 스트릭랜드같은 예술가에게 끌리는 것일까?

부인의 소개로 만난 스트릭랜드는 상상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다르게 매우 따분하고 지루한 사람이었다. 은행원으로 일하던 그는 삭막한 도시인의 모습을 여실히 보이는 듯 하다.

📖 세상에는 완전히 사회 조직속에 녹아들어 그 속에서라기보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서만 살아가고 있는 흐린 그림자 같은 사람들이 많은 법인데, 그들도 마치 그런 흐릿한 그림자였던것 같다.

지루한 그의 모습에 당황할 새도 없이 스트릭랜드는 가출해버린다. 영문도 모르고 그가 파리로 떠난 소식을 접한 부인은 분명히 그가 외간여자와 바람이 났다고 생각한다.

화자는 스트릭랜드를 회유하기 위해 부인 대신 파리로 여행길에 선다.

하지만 화자가 만난 스트릭랜드는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고 여자와 놀아나지도 않았다. 그저 빈약한 모텔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화자는 이 얼토당토 않은 선택을 한 스트릭랜드를 보며 악마에 사로잡힌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이곳에 온 것이다.

바람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부인에게 알리려 돌아온다. 하지만 사실을 전하자 부인은 안도하기는 커녕 더 크게 좌절하고 더이상 그가 필요 없다고 단언해버린다. 바람난 남편을 둔 부인은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고작 그림을 그리려 부인을 버렸다는건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트릭랜드를 등진 부인은 그에대한 집념만 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이 인물을 통해 불행을 감내하는 인간상에 대해 말한다.

📖 고생이 사람의 성격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행복은 어쩌다 그런 작용을 하는 수도 있지만, 불행은 대게 사람을 인색하고 집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Q3. 고생과 불행은 인간을 인색하게 만들 뿐일까?

📖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에 찬 것이며 성실한 마음속에도 얼마나 많은 기만성이 있고, 고결한 정신 속에도 얼마나 많은 천박함이 숨어있고, 또 사악한 마음 속에는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깃들어 있는가 등을 그 즈음의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을 작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자는 파리로의 여행길에서 돌아오면서 스트릭랜드에 대해 다시 평가하게 된다. 재미없고 따분한 인간인 줄만 알았던 스트릭랜드에게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창작자의 위엄을 느낀걸까. 책 초반부에 말했던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을 여기서 엿본듯 하다

하지만 꼭 세속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예술가의 기질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세상엔 그런 모습을 선망해 마치 허세를 부리는 듯 과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 세상에는 흔히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건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의 대부분의 경우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속하는 일파의 방침이 그런 이상, 세인의 의견에 반해 행동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략)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세상의 평판 따위는 아랑곳 없다고 코방귀를 뀌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컨대 그것은 한낱 허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화자는 다시 파리에 방문하게 된다. 이번에는 더크 스트로브라는 이상상을 그려 파는 화가와 함께한다. 더크 스트로브라는 인간상이 참 골치아픈게 호구짓을 나서서 한다는 느낌을 준다. 적당히 대중적인 그림을 그려 만족스러운 수입을 내지만 주변 화가들의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 그러면서도 돈이 필요하다고 오면 선심을 얹어서 빌려준다. 되갚지 못해도 말이다. 이런 인물이 독단적인 스트릭랜드와 만나면서 파멸에 뛰어든다.

그런 스트로브는 새로운 ‘미’를 창조할 능력은 없지만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은 가졌다.

📖 그것은 예술가가 이 혼돈된 세계에서 고심에 고심을 해서 만들어낸 것이야. 그러나 이 미를 판별해 낼만한 힘이 만인에게 다 주어진 것은 아닐세. 미를 인식하기 위해선 예술가가 맛본 괴로움을 이쪽에서도 거듭 맛봐야 하는거야.

그런 그는 아름다운 부인을 가졌지만 역시 불안에 떨며 철저히 ‘을’의 삶을 자처하고 있다.

📖 블랑시와 사귀는 모든 남자에게 나는 질투를 느끼고 있었지. 자네한테도 질투를 했었다네.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만큼 그 여자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블랑시 부인은 스트로브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은 것이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남성에게 되갚는 호의와 같은 것이었다.

📖 내가 애정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애무와 위안에 대한 여성적인 반응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이 대부분의 여자의 마음에서는 애정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나무 위에서나 성장할 수 있는 덩굴풀처럼 어떤 대상에 대해서나 불타 오를 수 있는 수동적인 감정이다.

이게 진실되지 못한 관계였기 때문일까. 스트릭랜드를 마주한 이 관계는 산산조각 박살나고 만다. 스트릭랜드가 앓아 누우면서 스트로브는 그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옮겨 간호하자고 제안한다. 부인은 알수없는 공포감과 거부감에 반대했지만 스트로브의 강경한 설득에 동의하고 만다.

그 5주남짓의 기간을 간호하면서 블랑시부인은 스트릭랜드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혐오의 감정처럼 비춰지던 그녀의 반응이 사실은 사랑의 감정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책과는 무관하지만 혐오와 사랑(애)는 크게 구분하기 힘들때가 많다고 느낀다.

스트로브는 수차례 블랑시부인을 찾아가며 돌아오기를 애원하고 편지도 남기지만 블랑시부인은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의 눈빛으로 그를 죽인다. 따귀를 때기리고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조차 그의 손을 잡지는 않는다.

애정처럼 보이던 여자의 호의는 증오로 바뀌고, 혐오처럼 보이던 것은 사랑으로 바뀌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더크 스트로브를 동정의 눈빛으로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화자는 이 일을 설명하는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맞다. 얼마나 우스꽝 스러운 상황인가. 누가 불쌍하고 나쁜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인간의 사랑이랄 것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다.

📖 그것은 자기가 환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육체를 제공하고, 이성으로는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환각을 현실 이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을 조금은 자기 이상의 것으로 만들고, 조금은 자기 이하의 것으로도 만드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다.
📖 나는 그가 아는 사람에게는 무턱대고 자기 괴로움을 털어 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동정을 기대하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의 조소를 사기가 일쑤였다.

스트로브가 동정을 받을만큼 진중한 사람이 아니라는 표현을 은은히 드러낸다.

또 스트로브가 그렇게 힘든 상황이 아닌것을 보여준다.

📖 그는 아직 젊다. 몇 년이 지나면, 모르는 사이에 지금의 모든 불행을 뭔가 일종의 기쁨을 수반한 슬픔으로 상기하게 될 것이다.

Q4. 블랑시 부인은 스트로브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블랑시 부인을 향한 스트로브의 태도는 진정한 사랑일까? 또 스트릭랜드를 향한 블랑시부인의 태도도 진정한 사랑일까?

스트로브는 왜 자신의 비굴한 위치에서도 남들에게 헌신하기 바빴을까? 블랑시 부인에게 따귀를 맞으면서도 왜 여생을 책임지겠다고 했을까? 진정한 사랑인가 깊은 이타심인가. 개인적인 견해지만 이는 철저히 이기심에서 비롯한 행동이다. 타인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자신의 부족한 처지 위에 동정을 사고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마음. 이런 모습은 앞선 스트릭랜드 부인과도 얼추 이어진다. 뒤이어 스트릭랜드가 말할 여성상에서도 겹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이제 중후반부로 넘어가는데 화자는 외딴섬에서 스트릭랜드를 다시 마주한다. 더 늙고 야윈 스트릭랜드는 그 외딴섬에서 행복하다고 할만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곳은 세간의 의무를 지우지도 않았고 그의 외로운 삶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그도 마음이 편해진건지 예전만큼 까탈스럽지는 않다. 자신의 생각을 흔쾌히 늘어놓기도 하고 절대 숨기던 예술 작품들도 선뜻 보여주려고도 한다. 그가 직접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가치관과 인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더불어 예술가의 삶. 또 우리 개인의 삶에도 인상을 주는 바가 크다.

📖 삶이란 외롭고 냉혹한 것이야. 왜 왔는지도 모르게 이 세상에 태어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가버리는 거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인간은 되도록 겸허해야 해. 그리고 조용함을 지닌 아름다움을 알아야해.
📖 사람들은 미에 대해 지나치게 가볍게 말한다는 사실이다. 말에 대해 무신경 하기 때문에 미라는 말을 너무 경솔하게 쓰고 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이 말은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또 스트릭랜드의 여성관과 연애관도 보여준다.

📖 여자란 남자에게서 받는 상처는 용서할 수 있지만 남자가 자기를 위해 베풀어주는 희생만은 결코 용서할 수가 없는 거요.
📖 여자들이란 연애밖에 할 줄 모르니까 그걸 터무니 없이 중요시 한단 말이오. 남자들 에게까지 그게 인생의 전부라고 설득하려 드는거요. 연애랑 인생에 있어선 보잘것없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요.
📖 자기 손으로 나를 끝어내리려고 했던 거요. 나라는 존재는 조금도 생각지 않고 다만 나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을 뿐이오. 나를 위해 무슨 일이고 기꺼이 해줬지

그와 대화를 나눈 화자는 인생의 외로움에 대해 고민한다. 맞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것이다.

📖 우리는 누구나가 다 이세상에서는 외톨이다. 황동 탑 속에 갇혀서 동료들과는 부호로 이사를 소통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그 부호 역시 공통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며 그 뜻은 애매하고 불확실한 것이 되고 만다. 어떻게든지 자기 마음에 간직한 소중한 것을 난에게 전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나 상대방에겐 그것을 받아들일만한 힘이 없다. 이리하여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동료들을 알 수 없으며, 또 그들도 나를 알지 못한채 맞닿는 법이 없는 평행선상을 오로지 혼자서 쓸쓸히 걸어가는 것이다.